체인지 메이커를 현장에서 만납니다.


4대째 모시를 짜는 인간문화재, 방연옥 장인

“4대째 모시를 못 버리고 업으로 삼고 있죠” 한산모시짜기 방연옥 장인


사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모시중헌디


한 여름의 비단 잠자리 날개에 비유되는 한산모시. 무더위를 식혀주는 상쾌한 모시의 촉감은 요즘 세대들에겐 다소 껄끄럽게 느껴질 순 있어도 우리 고유의 전통이다.  모시의 우수함은 이미 익히 알려져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라는 글로벌한 타이틀도 거머줬다. 최근엔 패션계에서 모시를 재료삼아 트렌드에 맞게 제작된 의류들이 각광받고 있다.  이 모시의 주산지가 바로 서천군 한산면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온 여인들의 삶은 대부분 비슷하다. 학교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 글 배우는 것 보다 쉽게 접했던 게 바로 ‘모시짜기’다. 


“다들 힘들고 지겨워해도 난 모시가 좋았다”


1945년 서천군 기산면에서 태어 난 방연옥 대가도 젖 먹던 때부터 모시로 놀던 서천 토박이다. 이곳 여자들은 누구나 모시일을 해야 하는 숙명 속에서 방연옥 대가도 당연히 그 운명에 자신을 맡겼다.  하지만 모시 짜는 게 여간 힘든 것은 아니었을 터. 모시 실은 건조하면 쉽게 끊어져 찜통 같은 더위에도 문을 닫고 바람을 차단한 채 눅눅한 상태에서 짜야만 한다. 방연옥 대가는 6월 말 장마 때부터 8월 말까지 후덥지근한 날씨가 모시 짜기 좋은 날이라 말한다. 

무더위 속에서만 피어나는 시원한 옷감이라니. 입는 사람이야 좋지만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지 헤아릴 수나 있을까.  그녀의 집에서도 이곳의 보통 여인들과 다르지 않게 어머니와 언니가 모시를 짜 생계를 이었다. 젖먹이 때부터 봐왔던 풍경은 어린 방연옥 대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학교를 가도 모시가 눈에 아른거리고 얼른 집에서 가서 모시 짤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방연옥 대가는 “내 나이 70이 넘고, 한 평생을 모시 짜는 일만 매달리니 다들 안 힘드냐고 물어본다. 왜 안 힘들겠나. 그래도 질려서 그만해야겠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담담히 말한다. 지금은 손꼽히는 기능보유자가 되어 한산모시관에 나와 작업하거나 관광객들 앞에서 시연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금은 그녀의 두 며느리도 방연옥 대가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으며 모시 명맥을 잇고 있다.  “가끔 모시짜다가 엄마 생각이 나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다가도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지요”

방연옥 대가에게 모시는 곧 어머니와의 추억을 의미 하는 것 같다. 여름이면 모깃불 피워놓고 동네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흐늘거리는 불빛 아래서 실을 서로 주고받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말린 모시풀 줄기를 입으로 째고 그렇게 실을 만들면 침을 묻혀 잇는 모시삼기를 이곳 여인네들은 모여서 함께 했다. 어린 방연옥 대가는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다가도 곧잘 어른들 일하는 모양을 흉내 내면서 실을 잇곤 했다. 


“어릴 때 솔직히 노는 것보다 베 짜는 게 더 재미있었다. 나는 이게 천직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별 관심이 없겠지만 이렇게 모시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누군가에겐 모시짜는 일이 그 시절의 서러움을 대변한다면 방연옥 장인에겐 포근한 추억과 운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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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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